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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비전이었다 - 텀블러

우리는 과거와 현재에서 배우는 것이 참 많다. 내 블로그 이름을 그래서 짓기도 했지만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다 배워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과거에 알고 있었던 것이며 끊임 없이 다시 배워야지만 정말로 현재에 안다고 할 수 있다.

텀블러 인수 뉴스를 접한지 며칠 지난 오늘, 데이빗 카프(David Karp)가 어떻게 텀블러(Tumblr)를 키웠는지 한 블로그 글을 보게 됐다. 지금은 인스타페이퍼 창업자인 마코 아먼트(Marco Arment)는 과거 데이빗 카프의 유일한 직원으로 시작해 몇 년간 함께 했으며 사실상 텀블러는 오롯이 그만의 제품이라는 글을 올렸다. (번외로 미국에서는 예전 회사 사장님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용감하게 자기 생각이나 사진을 세상에 공개하는지 참 궁금하다.)

여러가지가 생각났고 여러가지를 되새겨 보았다. 그가 세속적으로 성공해서가 아니다. 뉴스를 통해 또는 블로그를 통해 멀리 전해듣는 하나의 성공담이지만 그 안에 숨은 꿈과 성취에 대한, 희망과 도전에 대한 또 다른 무용담이 나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도 시작은 새로운 걸 해보기 위해서였었다.

한참 내가 뭔가를 만들겠다고 몰입하던 시기는 2000년 전후였다. 그 당시 나는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했고 서버, 웹 프로그램, 서버 프로그램을 모두 혼자 공부하고 만들어냈다. 이미 한번 사이드잡으로 대학 동기, 선배와 밤마다 모여 작당하던 시기가 있었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맛을 보는 데 그쳤고 두 번째로 참여한 것은 처음부터 주식회사 형태였고 지금까지도 몸 담고 있는 회사가 됐다.

매일 같이 뭔가를 생각하고 만들어냈고 아침마다 일어나는 것이 즐거웠다. 일하러 가면서 어제 하던 작업은 이렇게 마무리하고 또 새로운 이런 걸 해내야지 생각하면 나의 성공이 머지 않은 것 같았다.

2000년 입주했던 벤처보육센터 건물. 지금은 강의실이다. - 다음 지도 제공
2000년 입주했던 벤처보육센터 건물. 지금은 강의실이다. - 다음 지도 제공

문제는 비전이었다.

그 당시 내가 만들던 것은 쇼핑몰 플랫폼과 웹메일이었다. 2000년 전후로는 상당히 잘 팔릴 만한 아이템이었다. 포털 다음이 한메일로 성공을 거두었고 이메일 수요가 늘어나면서 기업용 웹메일 수요도 많이 있었고 전자상거래는 성장 일로를 달리고 있었다. 정부는 IT839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고 그 중에서도 소프트웨어 분야에 대한 다양한 지원은 이쪽 분야에서 있었다면 누구나 느낄 정도로 추진 동력이 컸다.

그러나 난 그런 흐름을 사실 잘 읽을 줄 몰랐다. 마찬가지로 우리 회사 동업자들은 시작할 때 사실 IT에 대해 잘 몰랐었고 이쪽 분야에서 어떻게 사업을 끌어나가야 할지도 잘 몰랐다. 모든 건 하나씩 겪으면서 배웠다. 회사 운영, 영업, 고객 관리, 홍보, 기술이나 제품에 대한 어필…

내가 데이빗 카프와 같은 강한 비전이 있었더라면 달랐을지 모른다. 지나간 걸 아쉬워하는 건 아니고 지금 생각해도 일에 대한 실행력은 상당히 컸지만 명확한 비전이 없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게 뭔지 또는 사람들이 뭘 원하게 만들어야 하는지 잘 몰랐던 것이다.

지금처럼 온라인으로 모든 게 해결되던 때가 아니었으니까 영업도 해야 하고 발품도 팔아야 해서 좀 다르긴 하겠지만 본질적으로 비전이 있었다면 우리는 이미 그때 약간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지 모른다. 좀 조악하더라도 사람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고 그걸 팔아 운영 자금을 댈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만들던 제품은 완성이 없었다. 뭘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사실 몰랐기 때문에 열심히는 했지만 상품성이나 완성도에 한계가 있었다.

우리는 투자를 받지도 않았고(또는 못했고) 매달 월급을 가져가는 데 한계가 있었다. 우리 회사의 운영 자금을 버는 사업 분야는 컴퓨터 대리점, 컴퓨터 학원이었고 직원 모두가 넉넉하게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실적이 나지 않았다. 1~2년 후 우리는 SI를 주로 하는 회사로 변신하게 되었고 생업 전선에서 좀 비켜나 있던 나도 그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그 이후로 순수한 열정을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은 다시는 오지 않았다.

2001년부터 운영하던 웹사이트 중 하나
2001년부터 운영하던 웹사이트 중 하나

마코 아먼트의 글을 보면 데이빗 카프 같이 뛰어난 제품 지향적인 사람(“product person”)은 딱 한 사람 봤으니, 바로 스티브 잡스(Steve Jobs)라고 한다.

I’ve only seen one other “product person” as good as David, and that was Steve Jobs.

성공한 사람들은 비슷하게 자기 고집이라고 할 수 있는 신념이 있다. 비전이 있으니까 신념이 있는 것일 것이고 남들이 뭐라든 꿈을 손에 잡기 위해 자기가 정한 길을 쉼 없이 같다. 그러다 크게 넘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인 예다. 그는 넘어져도 자기만의 길을 고집했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물론 성공한 사람들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내 주변에도 예전에 언론에도 보도되고 성공했다고 얘기됐었지만 지금은 야인이 된 사람도 있고 코스닥에서 승승장구하던 회사들 중에도 수 많은 회사가 사라지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죽지 않는 꿈이지 않은가? 꿈이 있다면 기어코 다시 일어난다.

SI를 10여년 하면서 비전을 잃어버린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 때와 같은 열정이 뒷받침이 되지는 않을 때라는 게 달라진 점이긴 하지만 과거에서 또 하나를 꺼내 되새겨 보고 새롭게 하는 것은 옛말과 같이 유익한 일이다. 溫故之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