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읽었었다. 내용이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사람이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무엇이 존재한다는 개념을 비교하면서 철학적인 생각을 깊게 하게 만들었던 책인 것 같다. 그런데 난 한 가지 뚜렷이 이 책을 통해 각인된 게 있다. 서양 언어에서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표현을 주로 하는 반면 한국어에서는 그냥 있다는 표현을 주로 한다는 것이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어 "나는 차를 가지고 있다"는 표현도 있고 "우리 집엔 차가 있다"는 식의 표현도 가능할 텐데 전자는 서양에서, 후자는 한국어에서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걸 머리에 각인하고 대학 때 읽었어도 아직 유지하고 있는 것도 사실 나 자신이 놀랍다.)
우리나라가 서양과 교류하면서 여러가지 말이 수입됐을 텐데 말이란 게 사람의 사상을 지배하는 매개가 되기도 하므로 내 생각에 우리의 생각이 서구화된 큰 이유 중에 하나가 이런 수입 말이 아닐까 한다. 서구화되는 거가 문제라는 건 아니고 말이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킨다는 게 문제다. 말하자면 우리도 모르게 우리는 안 좋은 쪽으로 세뇌되고 있는 거니까.
수입한 말의 예를 들자면 “시간을 죽인다”, “뜨거운 감자” 등 관용적 표현을 수입한 것도 있고 "가지고 있다"처럼 "우리"보다는 "내"를 많이 사용하는 표현 방법의 변화도 있다. ("우리"보다 "내"를 많이 사용하는 것도 "가지고 있다"는 표현 만큼 거슬릴 때가 많다.) 이 중 난 후자와 같은 표현 방법의 변화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방송이나 언론에서 이런 표현을 많이 한다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누구보다 다양한 출처의 정보를 종합해 내보내게 될 텐데 이 과정에서 번역자의 자질 문제인지 편집자의 성실성 문제인지 서구식 표현을 그대로 직역해 내보내는 경우가 많다. 방송이나 언론은 객관적이라는 선입견이 일반인에게는 있고 이에 따라 방송이나 언론의 말투가 객관적인 표현, 신뢰감 가는 표현이라고 일반화된 게 아닌지 싶다.
비약이라고 해도 할 수 없지만 난 이런 표현으로 인해 한국 사람들은 예전보다 소유욕이 강해졌고 인간 존재에 대해 물성화하는 생각이 강해져서 결국 인명 경시도 커진다고 생각한다. 내가 뭔가를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과 대상이 있느냐 아니냐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벌써 발상이 다르지 않은가? 전자는 일단 뭔가를 가지고 있는 주체가 있어야 하므로 후자와 달리 주관적이고 욕심이 보인다.
“그 분은 참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으시죠.” 얼굴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건가?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가진 거라면 버리거나 없앨 수도 있겠네? 일반인들은 아직 "그 분은 얼굴이 참 아름다우시죠"라고 하는 게 더 다수라고 생각되는데 예전보다는 전자처럼 이상하게(?) 표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생각된다. 예를 더 들어보자.
“너무나 완고한 성격을 가진 그로서는” 성격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꼭 가지고 있다고 표현해야 하나? "성격이 너무나 완고한 그로서는"이라고 하는 게 원래 우리 말투 아닌가?
한 가지 의미심장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한국말은 "가지고 있다"에 "있다"가 포함돼서 가진다는 의미 자체도 어떤 일시적인 상태임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 말은 근본적으로 있다/없다, 이다/아니다가 기본적인 사상인 것이다.
아무튼 한국이라는 사회가 참 많이 변화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변화가 있겠지만 이런 변화만큼은 참 달갑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