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관이나 공공 기관의 정보 시스템 관련 사업(프로젝트)을 수주하기 위해서는 아주 포멀한(formal) 제안서를 작성해야 한다. 사업을 수주하고 싶은 업체는 없는 살림에 인력을 쪼개 제안팀을 꾸리고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주 동안 제안 작업을 하게 되는데 프로젝트의 목표를 이해하고 업체 입장에서 최대한 돋보이는 내용으로 제안서를 작성한다.
민간 프로젝트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민간에서는 고객사와 사업 수행사의 어떤 합의점만 맞다면 대부분 간략한 형식으로 제안서를 작성하기도 하고 때로는 회사의 대표나 결정권자들끼리 뭔가 짝짝꿍이 잘 맞으면 제안 과정을 사실상 생략하고 진행되기도 한다. 특히 공공 프로젝트에는 대부분 감리가 전제돼 있어서 프로젝트 중과 말기에 두 차례 감리를 받게 되는데 이때 수행사가 제출한 제안서가 프로젝트 결과에 대한 평가 기준으로 상당히 크게 작용하므로 수행사 입장에서는 제안서를 아주 멋지게 써놨다가 실제로 그 내용을 만족시키지 못해 자기 발목을 잡는 결과가 되기도 한다.
제안서 작업은 어떤 목표를 정해 일정 기간 동안 인력을 투입해 협업하므로 이것도 사실상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만 같이 일하려고 해도 손뼉이 맞아야 일을 하는데 더구나 프로젝트 규모가 커서 제안서 작업도 큰 작업이라면 여러 사람이 함께 작업해야 하므로 이 제안서 작업도 PM이 있어야 하고 서로 정보 공유도 해야 하고 비용도 지출된다.
비용 얘기가 나오니깐 말하지만 이렇게 "프로젝트"를 하나 수행하는 것인데도 이 프로젝트에 대한 대가는 거의 없다. 사람과 시간, 물적 자원까지 소모되는데 보상이 거의 없다니! 권고 사항은 있다. 하지만 권고 사항이라 현실적으로 거의 없다. 이 뉴스 기사에서도 그렇지만 나도 15년을 각종 프로젝트를 하면서 제안서 대가가 있었거나 주변에 보상을 받았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제안서를 잘 쓰려면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을 상기해야 한다. 결국 프로젝트를 잘 이해하고 프로젝트 결과물을 잘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얼마나 제안서에 잘 표현하는지와 그 제안서를 심사위원들에게 발표하고 질문에 답변하는 프로젝트 PM의 능력이 중요하다. 하나씩 나눠서 보자.
- 가장 중요한 건 제안서 자체를 잘 쓰는 것이다. 내용과 형식 다 중요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내용일 것이다. 물론 제안서 작성 과정 자체에서 형식을 잘 만드는 것도 참 힘든 과정이기 때문에 중요도를 떠난다면 내용만큼 노력이 많이 드는 것일 수도 있다.
- 제안 내용은 프로젝트 내용을 잘 이해해야 잘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만약 이미 전에 발주 기관의 프로젝트를 수행해본 경험이 있다면 훨씬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참 힘든 문제가 하나 나온다. 발주 기관과 계속 일해본 회사와 일해보지 않은 회사가 경합을 벌인다면 일해보지 않은 회사는 사업을 따기가 참 힘들 것 아닌가? 일해보지 않은 회사가 아무리 용을 써도 이미 일해본 회사처럼 제안서를 잘 쓸 수 있을까?
- 제안 발표도 제안서 작성만큼 중요하다. 2번에서 말한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도 제안 발표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찾을 수 있으며 제안 발표가 판세를 뒤집을 수 있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젝트 PM은 당연히 본인 회사의 제안서 내용을 잘 이해해야 하며 발표도 잘 하고 심사위원 질문에도 답을 잘해야 한다. 잘 한다의 모범 답안은 내 생각에는 TV 방송에 나오는 각종 방송인이나 연예인의 표현력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일반인이 그렇게 내용을 포장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노력도 해야 하고 경험에서 나오는 연륜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제안서를 평가하는 심사위원들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대부분 심사위원들은 제안서를 꼼꼼히 볼 시간도 없고 볼 노력도 하지 않는다. 발주 기관에서 설명하는 제안요청 내용과 주안점을 1차적으로 고려하고 제안서를 보기 때문에 제안서의 내용과 형식이 다 중요한 것이다. 제안서가 다른 회사와 차별화됐다고 볼 수 있는 내용과 형식을 잘 갖춰야 한다.
최근에 프로젝트를 하나 맡게 되어 제안서를 작업하고 발표도 하면서 생각한 점을 정리해봤다. 결국 고객을 고객보다 잘 이해한다면 프로젝트 수주에 있어서 백전백승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간혹 제안 작업만이 프로젝트 수주 방법이 아닌 오묘한 경로가 존재하기도 하지만…) 제안 작업의 각론으로 들어가면 더 생각해볼 게 많겠지만 여기서 줄이기로 한다.
프로젝트 전략을 수립하고 제안서를 만드는 과정이 고달프긴 하지만 결국 프로젝트를 수주한다면 그 노력은 알찬 열매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