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 때 지하철을 타보면 많은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 오른편에 줄을 서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왼편에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바쁜 사람들은 걸어서 갈 수 있는 아름다운 배려라고 생각되는가?
사람들이 배려한다고 그러는 건 아니란 말이지!
우선 걸어가는 사람들이 정말 바빠서 걸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에스컬레이터에서 걸어가거나 가만히 서있거나의 차이는 불과 10초 ~ 1분 정도다. 이 정도 차이를 더 빨리 가는 게 중요할 정도로 바쁠까? 정말 바쁘면 계단으로 뛰거나 에스컬레이터 타기 전부터 뛰었어야지.
또한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이렇게 왼편을 비워놓는다고 오른편으로 줄을 서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왼편을 비워가면서까지 천천히 가도 괜찮은 건가?
현재 표준화된 보행 방향은 오른쪽 걷기다. 2009년부터 정부에서 그간의 관습이었던 왼쪽 걷기를 버리고 오른쪽 걷기를 일반화했다. 짐을 들 때 오른손으로 많이 들고 자동차도 오른쪽으로 다니는 걸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는 방식이다. 그런데 에스컬레이터에서는 사람들이 이런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짐을 든 사람은 에스컬레이터에서 굳이 걷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오른손이든 왼손이든 짐을 내려놓고 에스컬레이터 따라 가만히 흘러가는 걸 바랄 것이다. 그런데도 왼쪽으로 걸어가는 사람을 배려한다고 오른쪽으로 서서 짐을 내려놓고 오른손으로 핸드레일을 붙잡는다.
에스컬레이터에서 걸어가는 것의 문제는 사람이나 기계 안전상의 문제도 있지만 좀 깊이 생각해본다면 보이지 않게 강요되는 관습이라는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잖아도 우리나라에는 보이지 않게 강요되는 관습이 많다. 체면이나 사회적 지위, 다른 사람과의 관계 등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또는 하지 않는 것들. 난 에스컬레이터에서 왼편을 비껴주는 것이 이러한 보이지 않는 강요가 아닌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왼편에서 서있는 게 전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왼편에 가만히 서있는 사람한테 뒤에서 좀 비키라고 핀잔을 주는 경우를 종종 봤다.
우리나라는 이미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고 어떤 다른 나라를 가봐도 우리만큼 잘 사는 나라가 이제는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항상 1등, 1등만을 외치고 있다. 바쁜 게 좋은 거고 남이야 뭐라든 나는 빨리 가고 봐야 한다. 왜 아직도 이렇게 7~80년대 개발도상국 마인드로 살아야 하는 걸까? 우리는 품위있게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되려면 아직도 먼 것인가?